백범 김구 전문 배우로 유명하다.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. 연세대 철학과 동기였던 한국 최고의 연극 연출가 오태석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했다. 오태석에 의하면 학창 시절 "나는 왜 사는가" 어쩌구 하며 자살한다고 오도방정을 떨기에 그럼 이거나 한번 해보라고 연극을 시켰는데 데뷔작에서 주연상을 거머쥐는 발군의 실력을 토해냈다고 한다.[1]
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69년에 MBC TV가 개국하자 입사하여 탤런트로 활약하였다. 초기에는 각종 악역 및 단역을 전전하였으나, 1981년에 제1공화국에서 백범 역할을 실감나게 함으로써 유명해졌다.[2] 오히려 당시 주인공이었던 이승만 역할의 최불암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그 해 MBC 연기대상 등 각종 상을 흽쓸었다.
이후로도 사극 및 정치극 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. 보통 가부장적이면서도 속마음은 따뜻한 아버지 역을 주로 맡지만, 사극에서는 다소 어리버리한 간신 역으로서 거의 막판은 사망이나 관광을 당한다.
10편의 작품에서 백범 김구로 출연했으며, 그 덕에 여러 백범 기념 사업에 관여했고 김구를 고액권 수표에 들어갈 인물로 선정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.[3] 본인 역시 김구 선생에 대한 자료를 많이 수집했고, 김구의 국가관과 생애에 대해서 강단에 설 정도로 거의 준 전문가 수준이라고 한다. 김구를 잘못 해석한 장면이 나오면 지적도 서슴지 않았다고. 더군다나 처조부(아내의 할아버지)가 임시 정부 시절 법무 장관 겸 국무 위원을 지낸 박찬익 선생이고 아내의 숙모 역시 박찬익 선생과 함께 김구 선생을 모셨던 인연이 있어 더욱 각별하게 김구 선생 생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다. 그야말로 운명적인 배역. 김구의 차남 김신은 몇 번이나 고맙다며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오기도 했다고 한다. 하지만 “선친의 뜻을 받들어 평생 생신상 한 번 받지 않은 분께 밥 한 끼 대접받는 것도 죄스러운 일"이라 정중하게 사양했다고 한다.[4]
2016년 7월에 딸이 있는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로 이민을 떠났다. 예전부터 은퇴하면 가겠다고 여러번 이야기 했다. 현재 미국에 거주하며 교회 활동과 간증, 미주 중앙일보 칼럼 등을 기고하면서 지낸다.
딱 한가지 흑역사가 있다면 바로 희대의 망작 오! 인천에 단역으로 출연한 점인데, 이건 인성 관련은 아니고 단지 필모그래피 문제다. 영화가 워낙 시궁창 영화인 데다가 비중도 매우 낮은 배역이지만 그래도 그 분의 돈으로 이루어진 소나기의 수혜를 입긴 했다. 이 영화 출연료 하나만으로 집을 새로 샀다고 한다. 금전적으로 보면 득을 본 셈이고, 단역으로 얼굴만 살짝 비췄기에 딱히 그의 영화 인생에서 크게 언급되지도 않는다.
性别: 男
出生日期: 1940年07月18日
出生地: 韩国首尔
中文别名: 李永厚,李英厚
英文别名: 이영후,イ・ヨンフ
职业: 演员